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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븐하게 기괴한 영화<서브스턴스> 본문
어느 한 곳 빼지 않고 기괴하다
서브스턴스 작품 소개
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?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,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(데미 무어). 50살이 되던 날, 프로듀서 하비(데니스 퀘이드)에게서 “어리고 섹시하지 않다”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.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‘서브스턴스’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. 한 번의 주사로 “젊고 아름답고 완벽한” 수(마가렛 퀄리)가 탄생하는데... 단 한 가지 규칙,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.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? ‘기억하라, 당신은 하나다!’
*출처: 네이버 영화 소개
이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.
서브스턴스의 기괴함: 이 약물은 어떤 것이였을까?
이 영화의 핵심 소재인 "서브스턴스"는 매우 기괴하다.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스파클(이하 스파클, 데이무어 분)이 접하게 되는 이 약물이 어떤 약물인지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. 그렇다보니 영화 후반 스파클과 수(마가릿 퀄리 분) 둘 중 하나만 존재할 수 있다고 알고 있던 관객에게 뒷통수를 때리 듯 마지막에 스파클과 수 두 명이 존재하게 되었다. 그럼 이런 의문이 남는다. 이 약물의 존재는 어떤 것이지? 왜 만들어졌고 만든 회사는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가?
- 신약물로 추정되는데 왜 돈을 받지 않고 제공하는가?
- 만약 돈을 받고 제공했다면 수가 시간을 어겼을 때 계좌 등을 추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. - 서브스턴스를 만든 자들의 목적은 무엇인가?
- 서브스턴스를 척추 등 신체 조건이 좋은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목적을 가졌는 지 알 수 없다'
- 특히 투약자들은 본체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상담사는 "종국에 이르렀다"라고만 표현하지 개선품을 만들기 위해 투약자를 회수하는 등의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.
영화에서 '서브스턴스 제작사'는 어떤 목적을 얻으려는 것인 지 알 수 없다. 물론 이 영화는 처음 스파클이 큰 사고에서도 멀쩡했던 점, 마지막 엔딩이 현실과 동떨어진 점, 성 상품화를 소비하는 시청자를 비판하는 듯한 미장센 등 상징적 요소를 가졌기에 서브스턴스 자체도 중요한 요소이기 보단 미장센처럼 소비되었을 수 있다.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는 서브스턴스를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는데 정체를 알려주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.
성 상품화 표현의 기괴함: 과도함이 불러온 모자람
본 작품은 19세로 많은 장면에서 여성의 신체를 강조하고 노출 장면이 많은 편이다. 영화 중 노출 장면이 필요했을까 싶은 지점이 있다. 즉, 불필요한 선정성이 많다.
- 에어로빅 씬
- 성 상품화, 수의 심리적 불안함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에어로빅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스파클 대비 더 높았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.
- 골반에 닭다리가 들어간 기괴한 장면은 스파클의 집이 난장판 되는 것과 광고판의 모델이 변경된 것으로 충분히 가능했다. - 크리스마스 쑈의 댄서들
- 가족 단위 쇼에서 그렇게 과도한 선정성이 필요했을까? 성 상품화와 외모지상주의는 관객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감독의 의도는 알겠으나 전라가 아닌 과도한 노출로도 충분히 표현되었을 것이다.
그리고 개인적으로 연기변신을 통해 필자에게 충격을 준 하비 역의 데니스 퀘이드의 지저분한 식사 장면과 영화에서 강조된 입으로도 성 상품화와 외모지상주의 표현은 충분했다.
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성상품화나 외모지상주의를 당신들도 같이 만든 세상임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. 그러나 이 역할은 하비의 연기, 수와 하룻밤을 보낸 디에고를 만난 스파클로 충분히 표현되었다. 굳이 노출이 필요한 장면 같진 않았다.
엔딩의 기괴함: 호불호의 분기점
이 영화의 가장 큰 호불호는 역시 엔딩일 것이다. 이 영화는 미장센 연기 등을 통해 비유적인 장면을 많이 사용한 것처럼 엔딩씬을 통해 감독이 하고 싶은 메세지를 표현한다. 그러나 괴물의 등장, 신체 훼손, 노출은 앞 장면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. 예를 들면 경성학교: 사라진 소녀들 같달까? 장르적 일관성이 무너진 순간이였다.
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재림
특히 수가 자신을 재복제 한 괴물은 무대에 오르기까지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으며 피가 난무하고 몸이 분해되는 장면은 보기 힘들었다. 피를 관객에게 뿌리는 것은 이 사태의 공범은 당신들에게도 있다 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 같지만 이 방식이 최선이였을까? 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관객에게 성 상품화와 외모지상주의도 같은 것이라는 메세지였을까?
그런 의미에서 엔딩씬은 마치 경성학교: 사라진 소녀들에서 박보영을 보는 느낌이였다.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 미스터리하고 공포영화적인 색체가 급변하고 그 부작용으로 완성도에 타격이 있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엔딩 장면이 앞의 모든 장면을 지워버리는 부작용을 가져왔다.
기괴한 연출 대신 불안정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선 수가 일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엔딩이 성 상품화, 외모지상주의가 허망함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아니였을까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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